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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부 성경공부(032)_2024년 3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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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4-03-17 22:34

본문

로이드 존스 교리강좌 시리즈 1 

16_타락_The Fall(2/2)

 

 

1. 현재의 상태를 설명하고자 하는 이론들

(1) 이원론

(2) 진화론적 설명

(3) 기타 이론들
2. 사람과 세상의 현 상태에 대한 창세기 3장의 설명

(1) 창세기 3장의 역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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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타락의 원인과 단계

  _죄는 외부로부터 와서 불순종의 행위를 일으켰다

창세기 3장의 기록을 역사로 받아들였다면 이제는 그 기록이 무엇을 말하는지 살펴보도록 합시다. 첫 번째로 악과 죄와 시험은 외부에서 온 것이라는 사실을 말해 줍니다. 이들은 뱀을 통해 사탄으로부터 왔습니다. 저는 사 람 자신에게는 타락하여 죄를 범하게 할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는 사실을 정말로 강조하고 싶습니다. 육체적 인 원인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사람 안에 타락을 초래할 만한 육욕은 전혀 없었습니다. 이 시험은 전적으로 외부로부터 온 것이며, 사람은 그 시험에 대해 어떻게 행동할지 결정할 수 있는 완벽한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성 경의 가르침의 정수를 이루고 있는 대단히 중요한 요점입니다. 우리는 봄, 즉 인간의 골격 또는 인간의 육신 안에 있는 어떤 형태의 본능적 욕구가 인간을 타락하도록 이끌었다는 개념들은 완전히 버려야 합니다.

앞에서 보았듯이, 형상에 대한 로마가톨릭의 교리는 이런 개념을 대단히 강력하게 암시하고 있습니다. 로마가톨릭의 견해는 사람은 언제나 그의 육체적 부분인 야수성이 자신을 타락시키려 하는 경향에 대해 투쟁을 하고 있으며, 하나님은 사람이 자신의 이 타락으로 이끌어 가려는 부분을 제어할 수 있도록 그에게 원의)라고 하는 특별한 은사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전혀 다르게 이 야기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완벽하게 균형이 잡혀 있었습니다. 그의 안에는 자신을 타락하도록 끌어내리는 것이라고는 전혀 없었습니다. 죄는 전적으로 외부에서 들어왔습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보게 되겠지만, 이것은 우리의 교리에 있어서 대단히 중대한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단계를 거쳐 타락에 이르는 것일까요? 저는 여러분에게 창세기 3장의 내용을 상기시켜드리려 합니다. 첫 번째는 뱀 이 남자가 아니라 여자를 공격했다는 것입니다. 제가 이미 인용했던 구절들에서 이 사실의 중요성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이 문제를 다루지는 않을 것입니다. 아마도 다른 곳에서 다루게 되겠지요. 하지만 성경은 여기 창세기 3장에서뿐 아니라 다른 장에서도 이 사실을 강조합니다. 사건의 전모는 다음과 같습니다. 여자는 하나님에 대한 마귀의 중상모략에 귀를 기울여서 하나님의 말씀과 사랑을 의 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여러분이 알고 있듯이 여자는 하나님이 금하신 것을 바라보고 그 열매가 먹음직하다는 것을 알고는 그것을 바라고 갈망하기 시작했으며, 이 갈망은 다음 순간 분명한 불순종의 행위로 그녀를 이끌었습니다. 여자는 의도적으로 하나 님의 명령을 어기고 하나님이 그녀와 아담에게 하지 말라고 하신 일을 했습니다. 여자가 열매를 주자 아담은 그것을 받아 여자와 함께 먹었습니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모두 죄를 범했습니다. 여자가 먼저였고 남자가 그 뒤를 따른 것입니다.

여기서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이런 행동을 하도록 만들었는가?"라는 질문이 제기됩니다. 물론 이 질문에 궁극적인 대답을 할 수는 없습니다. 지금까지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대답은 사람의 도덕적 구성, 그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 들어졌다는 사실, 자유의지를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 등이 어쨌든 이와 같은 불순종을 가능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이상은 알 수 없습니다. 사탄 자신이 어떻게 해서 타락했는지에 대해 완전한 설명을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아는 것은 사탄에 게 야심이 들어왔고 이 야심은 신적 지식에 이르는 지름길에 대한 욕구라는 특별한 형태를 띠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이것을 정말로 강조하고 싶습니다. 대부분의 거짓 교리들, 특히 성화에 대한 거짓 교리들의 궁극적인 문제는 이 교리들이 뭔가 지름길을 찾으려 노력한다는 것이며, 사람이 몰락한 근본적 원인도 바로 지름길에 대한 추구였다는 사실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향해 그들과 하나님 사이의 교제를 발전시켜 결국 궁극적인 목표 지점에 이르도록 하려는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하지만 마귀가 다가와 말했습니다. "너희는 그 길을 따라가지 않아도 돼. 그 긴 시간을 허비할 필요 없어. 내가 말하는 대로 하기만 하면 즉시 목표에 도달하게 될 거야." 이것이 바로 지름길입니다. 지름길은 언제나 우리의 관심을 끕니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의 길이 너무 느리고 힘들다는 생각을 품습니다. 대부분의 사교 집단들은 쉽고 빠른 방법을 제시한다는 개념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 그들은 언제나 성경적 방법보다 더 빠르고 단순하며 직접적인 방법을 보여 주겠다고 말합니다.

 

_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졌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의심이 교묘하게 스며들었다는 사실입니다. 그 결과가 무엇이었습니까? 의심 은 우리가 하나님의 법을 범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도록 만들었습니다. 저는 계속해서 실제로 나타난 결과가

아닌 사람들의 마음에 일어난 결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하나님이 자신들의 삶의 가는 길을 결정하시도록 하기를 거부하고 자신들의 삶을 스스로 결정 하기로 결심한 행동이었습니다. 문제의 본질은 그들이 하나님의 계획과 목표를 한쪽으로 치워 버리고, 그 자리를 스스로의 생각과 방 법으로 대치했다는 사실입니다. 유명한 에밀 브루너(Emil Brunner) 교수는 이 사건에 대해 매우 흥미로운 심리학적 분석을 제시합니다. 그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이 사건에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요소가 있었습니다. 열매에 대한 욕구, 귓가에 속삭여져 그 욕구를 더욱 불 타오르게 한 하나님에 대한 의심, 그리고 마지막으로 모든 상황을 변화시켜 버린 야심. 처음에 근원적인 욕구가 있었고 여기에 뱀이 의심을 불어넣어 이 욕구를 이용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망설이고 있었습니다. 이 때 야심이 들어옵니다. "너는 하나님같이 될 수 있어… …너는 모든 것을 알 수 있어… …하기만 하면." 야심이 너무 커져 균형이 깨어지고 그들은 타락했습니다.

여러분에게 강조하고 싶은 것이 한 가지 더 있는데 그것은 창세기 3장에 묘사된 내용과 요한이 그의 첫 번째 서신에서 말하고 있는 바가 놀랄 만큼 일치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요한일서 2 15절에서 요한은 "이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이어서 세상에 대한 사랑을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으로 분류합니다. 창세기 3장에는 욕망이 등장합니다. 열매가 보기에 좋았다는 것은 안목의 정욕입니다. 이어서 이생의 자랑인 위대하게 되고자 하는 야심, 놀랍고 멋들어진 존재가 되고자 하는 야심이 나타납니다. 똑같은 요소들입니다. 제가 이미 말씀드렸듯이 사실상 이 요소들은 성경 전체에서 계속 등장해 모든 곳에 영향을 끼칩니다.

 

_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사람만이 죄를 지을 수 있다

이 모든 것 외에 다음과 같은 두 가지 특별한 사항을 추가하고 싶습니다. 사람은 자유로운 영적 인격체이기 때 문에 죄는 오직 사람만 지을 수 있으며, 태초부터 그러했습니다. 짐승은 죄를 지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라는 너무 놀라운 모습으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사람은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자유로운 인격과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지음 받았다는 사실 자체가 그들을 이런 가능성에 노출시켰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그 이상의 역할을 한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죄의 가능성에 노출되는 원인이 되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_구원은 오직 사람에게만 주어졌다

여러분이 생각해 보셨으면 하는 두 번째 사항은, 천사들 역시 타락했다는 것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어 우리가 알 고 있지만, 성경 어디에도 타락한 천사들이 구속되리라는 말은 나와 있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구원은 오직 사람만을 위한 것입니다. 아마도 그 이유가 궁금하셨을 것입니다. 천사들은 사람과 마찬가지로 타락했습니다. 그런데 왜 천사들에게는 사람의 경우와 같은 구원이 없는 것입니까? 저로서는 방금 전에 말씀드린 사람의 경우 유혹과 타락이 외부에서 왔기 때 문이라고 하는 설명을 받아들일 용의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책임이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만 차이는 있습니다. 사탄의 타락은 내부로부터 왔습니다. 시험은 사탄의 외부에서 찾아온 것이 아닙니다. 그 실체를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어쨌든 차이가 있습니다. 무 한하신 은혜와 자비의 하나님이 이런 구분을 하신다는 것이 가능할까요? 사람은 단지 타락한 천사의 교묘하고 기만하는 악한 능력에 굴복한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자비와 긍휼, 불쌍히 여기심을 베푸셔서 천사에게 주시지 않은 구원의 길을 사람에게는 주시는 것이 가능했던 것일까요? 이 문제는 여러분 스스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3) 타락의 결과

 

_육체를 의식하게 됨

 이제 실제적인 문제를 살펴봅시다. 하나님의 법과 계명에 대해 이같이 불순종하고 범죄한 결과는 무엇이었을까 요? 그 결과들은 여기에 매우 분명하게 서술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로 아담과 하와가 그들의 육체를 의식하게 되었다는 것이 언급되었습니다( 3:7). 이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사람은 원래 하나님에 의해 만들어졌으므로, 그의 육체에 대해 전혀 의식하지 않았습니다( 2:25). 남자와 여자는 벌거벗었으나, 그것은 그들에게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범죄하고 타락한 순간 수치심이 발동했으며, 그들은 무화과 나뭇잎으로 자신을 가리려 애썼습니다.

성경이 이 사실을 강조하는 이유는 여기에 큰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담겨진 의미를 살펴볼 때는 두 가지 위험에 주의해야 합니다. 죄의 성적 요소를 너무 과대하게 생각하는 위험이 있는 반면, 성경이 명확하게 지적하고 있는 성적 요소를 무시해 버리는 위험도 있습니다. 제일 먼저 아담과 하와의 육체가 그들에게 문젯거리로 변하는 일이 벌어졌으며 그 이후 항상 그래왔습니다. 사람과 동 물 간의 한 가지 차이는 동물은 자신의 육체를 사람이 의식하는 것처럼 의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어 떤 의미에서는 하나님 자신의 영광의 반영이자 하나님의 모양으로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신 몸이 문젯거리가 되었다는 사실이 죄에 빠진 인간의 처지를 집약적으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사람이 처한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그가 자신의 몸에 대해 이와 같은 수치심을 느꼈다는 것입니다.

 

_죄의식

다음에 강조된 것은 아담과 하와의 죄의식입니다. 열매를 먹은 순간, 그들은 자신들이 뭔가 잘못을 저질렀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즉시 스스로에게 정죄를 받아 죄의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어서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 이 생겨나 날이 서늘할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듣자 하나님께 달려가는 대신 도망가 버렸습니다( 3:8). 그 전에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은 경험할 수 있는 최상의 행복이었습니다. 그들은 완벽한 교통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달려 나갔습니다. 이제 그들은 하나님께로부터 달아났고, 그들이 가진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은 지속되었습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그들은 자기들이 다른 무엇보다도 영광스럽게 생각하였던 하나님과의 교제, 그리고 교제 의식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_영적인 죽음

다음에는 아담과 하와가 분명히 영적인 죽음을 경험했다는 사실이 강조됩니다. 그들은 전혀 다른 처지에 놓여 낙원, 즉 에덴 동산 바깥으로 쫓겨났으며 자신들의 의지로 돌아오는 것은 금지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생명 나무로 가는 길을 지켜 그들이 에덴 동산에 들어가는 것을 막은 불 칼을 기억하십니까(3:24)?

 

_자연과의 새로운 관계

하지만 이에 덧붙여 그들은 자연과도 완전히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수고하는 일이 없었지 만 이제 아담은 수고를 해야 했고, 땀을 흘려야 했습니다. 그는 이마에 땀을 흘려 먹을 것을 얻어야 했습니다. 자 연에서는 어려움들과 장애물들이 생겨날 것입니다. 그는 자연을 경작하고 가시와 엉겅퀴와 다른 모든 문제를 극복해야 할 것입니다(3:17-19).

 

_도덕적 성품의 왜곡

게다가 아담과 하와가 도덕적 성품의 왜곡을 경험했다는 사실도 뒤이어 나오는 가인의 이야기를 통해 즉시 발 견할 수 있습니다. 가인의 성품 자체에도 자신의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왜곡이 존재했던 것입니다.

 

_육체적 죽음

 창세기 3장에 기록된 마지막 결과는 육체적 죽음이라는 결말입니다. 이 문제는 앞에서도 잠깐 다루었습니다. 다음과 같이 표현해 봅시다. 사람은 죽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했다면, 계속해서 하나님과 교통하며 살았다면, 그는 결코 육체의 죽음을 경험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죽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타락의 결과 사람 이 죽지 않는 것은 불가능해졌습니다. 라틴어로 표현하자면 원래의 상태는 posse non mori였고, 지금은 non posse non mori13) 입니다. 이제 사람은 죽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특별히 개입하시지 않는 한 사람이 죽지 않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성경은 아담이 그가 취함을 입은 흙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표현했습니다(3:19). 죄가 아니었다면 이 일은 아담에게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로마서 5 12절에서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 니......." 사망은 죄에 의해 그리고 죄의 결과로 들어온 것입니다.

 

_타락의 육체적 영향은 시간이 흐른 후 나타났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것들은 즉각적으로 일어난 결과들이지만 우리가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할 사항들이 더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에게 일어난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즉시 모든 지적 능력을 잃어버린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상 사람의 지적 능력은 그 후에도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사람의 지적 능력은 보존되었습니 다. 창세기의 다음 장들에서 사람이 어떻게 음악을 만들고 성을 건설하고 큰 문명을 발전시켰는지 읽어 보십시오. 사람은 지적 능력을 상실하지도 않았고 육체적으로도 즉시 죽지 않았습니다. 사실상 즉각적인 육체적 변화는 전혀 없었던 것처럼 보입니다.

다시 말해, 죄의 결과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늦게 나타났습니다. 창세기 6장에서 묘사된 대로, 시간이 지나자 사람의 지적 기능과 도덕적 기능, 그 외 모든 기능이 크게 감소되었지만, 이 일이 즉각적으로 발생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때로 사람들은 아담이 죄를 짓고 타락한 그 순간 사람이 경험할 수 있는 최악의 상태로 굴러 떨어졌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아담은 제가 묘사한 것처럼 본질적인 의미에서 타락했고, 그 결과 쇠락이 따라왔습니다. 즉시 육체적인 죽음에 이르지는 않았으나 어느 정도 시간 이 흐르자 죽었습니다. 그의 정신적, 도덕적 특성들에 대한 영향도 시간이 흐른 후 나타났습니다.

 

_정리

지금까지 말씀드린 내용들을 정리해 보도록 합시다. 몇 가지 법적 결과들은 즉시 일어났습니다. 지금까지 오직축복만 받았던 사람이 이제는 즉각 정죄 아래 놓여 하나님에 의해 벌을 받았습니다. 영적인 면에서, 사람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원의로부터 한순간도 지체하지 않고 즉각 떨어졌습니다. 범죄한 순간 사람은 자신의 고결함, 즉 하나님의 도덕적 성품 과의 교통을 잃어버렸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는 즉시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었습니다. 두려움이 들어오고, 제가 말씀드린 여러 가지 일이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육체적 결과들은 더 서서히 따라왔습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제가 강조하고 있는 것은 사람이 타락했을 때 그가 자신의 본질적 특성이나 속성들을 잃어버리고 더 이상 사람이 아닌 다른 존재가 되어 버린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람의 지성, 자기 분석 능력, 이해력, 의지, 이 모든 것은 남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원의와 하나님과의 교제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는 공포에 질려 자신을 숨기고 부끄러워했으며-나쁜 의미의 '자의식'무엇을 할지 알지 못했습니다.

타락의 결과 사람은 그런 존재가 되었습니다. 사람에 대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요? 옛 청교도인 존 휴(John Howe)가 제가 지금까지 읽거나 들어 본 것 중 가장 훌륭한 묘사를 했습니다. 그는 타락의 결과로서의 사람은 그에게 런던이나 여러 먼 나라에서 볼 수 있는 커다란 건물들을 생각나게 한다고 말했습니다. 지금은 폐허가 되어 버린 큰 왕궁이 있었습니다. 바깥에는 "수세기 전, 이러이러한 왕이 살았노라."고 씌어진 표지판이 있습니다. 타락의 결과, 사람에게는 "한때 하나님이 사셨노라."는 말이 씌어졌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가장 심오하고 가장 무시무시한 진리들 중 하나를 살펴보았습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내용이 사람들과 세상이 오늘 날과 같은 모습을 하게 된 이유입니다. 처음에 위대한 모습으로 출발했으나 "한때 하나님이 사셨노라."로 끝맺음했습니다. 죄가 얼마나 끔찍하고, 얼마나 무섭고, 얼마나 비참합니까!

 

12) 흠정역 성경에는 "아담처럼"으로 번역되었다(역주)

13) posse non mori : 죽지 않을 수 있음, non posse non mori : 죽지 않을 수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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